아파트 적정가를 왜 하나의 숫자로 말할 수 없나
아적분은 적정가를 숫자 하나로 적지 않습니다. "이 아파트의 적정가는 6억 3천만 원입니다" 대신 "5억 9천에서 6억 7천 사이"처럼 폭을 가진 값으로 보여드립니다.
숫자 하나가 훨씬 편합니다. 화면도 깔끔하고 읽기도 쉽죠. 그런데도 굳이 범위로 만든 이유가 있어서 적어둡니다.
딱 떨어지는 숫자는 정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계산에도 오차가 있습니다. 문제는 오차가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차를 감춘 채 숫자 하나만 내놓을 때 생깁니다.
"6억 3천만 원"이라고 적으면 읽는 사람은 그게 정확한 값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실제로는 5억 9천일 수도, 6억 7천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폭이 8천만 원입니다. 그런데 화면에는 그 흔들림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범위로 적으면 "여기까지만 확신한다"는 사실이 숫자와 함께 전달됩니다. 제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한 화면에 같이 나오는 셈입니다. 덜 깔끔하지만 덜 틀립니다.
가격 차이의 상당 부분은 제가 볼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오차는 세 군데에서 들어옵니다.
첫째, 거래가 많지 않습니다. 같은 단지 같은 평형이라도 1년에 서너 건만 팔리는 일이 흔합니다. 그 서너 건이 몇 층이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에 따라 시세가 출렁입니다. 표본이 얇으면 그렇게 됩니다.
둘째, 같은 평형 안에서도 집이 제각각입니다. 1층과 로열층, 수리한 집과 안 한 집, 앞이 트인 집과 옆 동에 막힌 집. 실거래 신고서에는 층 정도만 적히고 나머지는 안 적힙니다. 값을 가르는 조건 상당수가 애초에 기록에 없습니다. 안 보이면 못 셉니다.
셋째, 시장이 계속 움직입니다. 석 달 전 거래와 지난주 거래는 같은 시장이 아닙니다. 시점을 맞춰 보정해도 그 차이가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범위가 넓다면 잘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폭 자체가 정보입니다. 좁으면 확신이 크고, 넓으면 작습니다. 거래가 활발한 대단지 국민평형은 좁게 나옵니다. 재료가 넉넉하니까요. 거래가 뜸한 소규모 단지나 드문 평형은 눈에 띄게 넓어집니다.
그래서 값보다 폭을 먼저 보시는 편이 낫습니다. 폭이 넓다면 그 숫자를 너무 믿지 마시라는 신호입니다. 제가 "이 단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방식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사실 가격을 다루는 곳은 대부분 이렇게 합니다. 은행에서 담보를 평가할 때도 시세를 하한가·일반가·상한가로 나눠 봅니다. 감정평가서에도 폭이 있고요. 숫자 하나로 딱 떨어지게 말해주는 쪽이 오히려 드뭅니다. 그럴 때는 그 숫자가 어떻게 나왔는지 한 번 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범위 위쪽이라고 사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매물 가격이 범위 아래쪽에 있으면 그동안의 흐름에 비해 싼 편입니다. 범위 안이면 특별히 싸지도 비싸지도 않습니다. 그냥 흐름대로인 겁니다. 위쪽이면 비싼 편이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지 따로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재건축 이야기가 돌고 있거나, 새로 생기는 역이 가깝거나 하는 이유 말입니다.
이유를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을 갈라놓자는 게 이 도구의 목적입니다. 비싸다는 표시는 사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무엇을 확인하고 사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같은 값을 내더라도 그 차이는 남습니다.
범위는 자신 없는 계산의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반대로 봅니다. 어디까지 아는지 밝히는 쪽이 숫자를 더 오래 쓰게 만듭니다.
⚠ 아적분은 참고 도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거래의 판단과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